생각의 틀을 짜다 1

2025. 3. 4. 04:32심리학

'인지'란 눈, 코, 입, 귀와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인 외부 세계의 정보들을 이해하고, 사고하고, 기억하는 정신 활동입니다. 영유아의 인지 발달은 온통 낯설고 새로운 세상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며, 그 결과로 세상에 적응할 수 있게 되지요. 생후 2년 동안의 인지 발달은 어느 정도 타고난 능력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7세 동안에는 인지 발달이 양적, 질적으로 가속화되는데, 이때가 바로 고등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 반구의 앞부분인 전두엽이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의 뇌 활동량은 어른의 두 배에 이르며, 신경세포 뉴런 간의 연결인 '시냅스'가 무수히 많이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왜?"라고 묻는데, 대답을 들어도 또 "왜?" 하고 반문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요. '중2병'만큼 무섭다는 '왜요 병'에 걸린 아이들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시기에 부모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더 다양한 지식을 가르쳐주어야 할까요? 더 많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줘야 할까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인지 능력을 발휘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자극하는 것이며, 여기에 그림책이 좋은 도구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좋은 도구로 그림책을 잘 활용한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서포터가 될 수 있습니다. "전 조작기" 오랫동안 어린이의 학습과 발달을 연구했던 '피아제'는 인지 발달의 과정을 감각 운동기, 전 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의 4단계로 나누었습니다. '감각 운동기'는 감각과 운동 능력을 이용해서 세상을 경험하는 때이며, '전 조작기'는 말 그대로 아직 논리 적이고 조작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때입니다. 이 두 단계가 바로 영유아기에 해당합니다. 이후 학령기가 되면 아이들은 '구체적 조작기'에 이르고, 눈에 보이는 것이나 직접 경험한 구체적인 것에 대해 초보적인 조작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청소년기부터 비로소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것까지 사고할 수 있는 '형식적 조작기'에 도달하지요. 앞서 제1장 「그림책 세상을 만나다: 감각 발달」에서 감각 운동기에 대해 이미 이야기했으므로, 이 장에서는 2~7세까지 나타나는 '전 조작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조작기'의 아이들이 보이는 가장 흥미롭고 특징적인 인지 형태로는 상징적 표상, 자기 중심성, 물활론을 들 수 있습니다.
"상징적 표상"
'상징적 표상'은 지금 눈앞에 있지 않은 대상을 정신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전 조작기'에 이른 아이가 소꿉놀이를 하며 빈 접시에 과자가 있는 척 냠냠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아이가 과자의 이미지와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전 "상자가 아니야"의 표지는 마치 골판지 상자를 만지는 것 같은 촉감을 느끼게 합니다. 책장을 넘기면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아기 토끼가 보여요. 상자 안에서 뭐 하고 있냐고 묻자, 아기 토끼는 상자가 아니라고 답하며 운전을 하는 척합니다. 아기 토끼는 머릿속으로 자동차를 떠올린 거예요. 다시 책장을 넘기고 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아기 토끼에게 상자 위에서 뭐 하고 있냐고 물자, 이번에는 등산을 하는 척합니다. 산을 떠올린 것이지요. 이렇게 상징적 표상 능력을 갖추면 흔하디 흔한 상자 하나로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신나게 놀 수 있습니다. 상징적 표상의 더 발전된 형태는 언어입니다. 언어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에요. '과자'라는 낱말을 듣는 순간, 우리말을 아는 아이들은 자동으로 과자를 떠올립니다. 아이가 듣고, 이해하고, 말 하는 어휘가 늘어난다는 것도 상징적 표상 능력이 발달하는 것입니다. 그림 역시 상징적 표상인데, 예를 들어 낙서 같은 선을 쭉쭉 그린 아이에게 그게 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엄마'라고 답해요. 비록 조금도 닮지 않았더라도 아이는 분명히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린 것입니다. 
"자기 중심성"
'자기 중심성'은 '전 조작기'의 아이들이 오로지 자신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믿는 성향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기 중심성을 이기심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아직 타인의 관점이나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할머니와 통화를 하다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겠다는 아이는 전화기 너머 할머니가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 그림책 속 주인공이 집 밖에 나타난 괴물에게서 왜 도망치지 않는지 답답해하는 아이는 주인공이 괴물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오리야? 토끼야?"의 표지 그림이 오리로 보이시나요. 토끼로 보이시나요? 마치 착시 그림처럼 알쏭달쏭한 그림을 사이에 두고 왼쪽 페이지의 화자는 오리라고 주장하고, 오른쪽 페이지의 화자는 토끼라고 주장하며 서로 다니다가 오리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다란 부리가 더 눈에 띌 것이고, 토끼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다란 귀가 부각되어 보일 거예요. 그림이 살짝 흔들리면 오리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오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보이고, 토끼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토끼가 깡충깡충 뛰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고요. 이렇게 두 화자는 자기 중심성을 드러내며 평행선을 달리다가 결국 관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고, 그 결과 타인과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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